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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니아 공식 포럼

[[창작의 왕]] (--------데바 숲의 형제--------)

  • Koschevnikovi2503
  • 2023-09-26 17:55
  • 276
  • 0

제노니아에 이렇게 진심이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시작은 형으로부터 온 성의 없는 카톡 한 줄이었다.

 

(제노 ㄱ?)

 

이 인간이 왠 일로 카톡이지?
내가 아는 형이라는 인간은 돈을 빌릴 때가 아니라면 먼저 내게 연락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형이 대체 무슨 일일까.
의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찬가지로 성의 없는 답장으로 응수했다.

 

(그게 뭐임?)
(제노니아ㅋㅋ)
(???)

 

익숙한 이름.제노니아.
낭만의 시대, 피쳐폰 속에서 나와 함께 했던 서사시의 이름이 뜻밖에도 형의 입에서 튀어나왔을 무렵
무언가에 홀린 듯이 검색을 하고,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한 나는 머지않아 이번의 제노니아가 리니지라이크라는 사실을 알고는 공허함에 몸서리쳤다.

 

(지금 사전예약중임. 사전예약 ㄱ)
(...)

 

나도, 형도, 제노니아도. 추억 속의 광경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 덧없는 시간의 흐름이 미웠다.
퉁명스럽게 대답이 나왔던 것은 아마 그래서인 것 같다.

 

(뭔 이딴 똥겜을 한다고 자빠졌음?)
(ㅋㅋ)
(이런 거 님이나 하셈. ㅅㄱ.)

 

형은 그 뒤로 말이 없었다.
기대하지 않았다.
흔해빠진 리니지라이크 게임이 재미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어렸을 적 즐겼던 제노니아 시리즈의 감동을 다시 맛보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네 살 터울인 형.
적지 않은 나이차였기에 형과는 항상 알 수 없는 거리감이 있었다.
그런 형과 지금 와서 같은 게임을 하며, 뒤늦은 유대감을 나눌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렇게 2달이 지났을까?
제노니아라는 이름이 머릿속에서 희미해져 갈 즈음, 형에게서 다시 연락이 온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너 진짜 안 할 거냐?)
(뭘?)
(제노니아. 지금 시작하면 지원 다 해줌.)
(맨날 돈 빌려가면서 뭔 돈이 있다고?)
(나 라인임. 나만 믿으셈.)

 

형이 아직까지 제노니아를 붙들고 있다는 것.
그것도 열심히도 모자라, 한 서버의 라인으로 군림하고 있다는 것.
혼자서도 충분히 재미를 보고 있을 터인데, 굳이 내게 다시 제안을 했다는 것.
의문스러운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지만, 나는 이미 결심을 마쳤다.

 

(그래. 까짓 것 해 본다 내가.)

 

커뮤니티를 찾아보고, 최대한의 정보를 모은 뒤 계정을 생성했다.
지팡이가 가장 좋다는 여론에 고민 없이 지팡이를 골랐다.
그렇게 쉐이드 숲에서 마주한 형은, 단검을 쥔 채로 나를 반겼다.

 

(오 지팡이 골랐네? 갓팡이가 1티어임.)
(님은 왜 단검임?)
(간지나잖아ㅋㅋ)

 

형과 나는 이토록 다른 사람이었다.
손해 보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나.
죽음을 무릅쓰더라도 자신의 길을 걷는 형.
그런 형이 건넨 다이아를 주섬주섬 받아들고, 열심히 거래소로 아이템을 받았다.

 

가슴이 뛰었다.
드넓게 펼쳐진 쉐이드 숲은 음침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우글우글한 디폰들을 상대하며 레벨을 올렸다.
인벤토리에 잡동사니가 늘어갈수록, 형과의 카톡 또한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차원의 정수는 어디다 쓰는거임?)
(좀 찾아봐라;; 그걸로 컬렉 박음.)

 

형은 매번 귀찮다는 듯 틱틱댔지만, 큰 도움이 된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마치 토끼를 쫓는 거북이처럼. 까마득한 상위권의 랭킹인 형의 뒤를 쫓으며 이를 갈았다.

 

(아니 니플헬성 선공몹 왤케 많어? 퀘를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ㅋㅋ 되플헬 오면 좋아 죽겠네.)

 

명중만을 위한 최소한의 컬렉만을 수급한 채로 메인퀘를 밀었다.
무엇이 날 이토록 간절하게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되플헬은 진짜 미친거임? 누가 만든건지 머리 속 좀 뜯어보고 싶네.)
(그거 난이도 너프된거임. 나 때는 수동으로 하나하나 잡았음. 편한 줄 알아야지ㅋㅋ.)
(제발 도와줘.)
(아 침공가야되는데.)

 

힘든 퀘스트 구간에 여지없이 화면에 떠오르는, 형의 파티 초대 알림.
수락 버튼을 누르고 니플헬 성에서 망연자실하게 서 있다 보면, 저 멀리 미니맵에서 파란색 1이 다가온다.
그리고는 허탈할 정도로 쉽게 디폰을 해치운다.

 

(너 누구한테 죽었음?)
(몰라.)
(킬보드를 열어.)
(...라는데?)
(ㅇㅋ 딱 기다려라.)

 

누군가 나를 죽인 날이라면, 형의 닉네임은 어째서인지 매번 빨간 색이 되었다.
필드에서 나를 건드린 놈들이 하나같이 고역을 겪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고맙기에 앞서, 내심 원망스러웠다.
이제 와서? 왜?

 

(이 게임 사람이 별로 없어서 인력 하나 하나가 소중해. 쪼렙이어서 눈치 볼 거 없으니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라.)
(아...)

 

그렇구나.
그저 사람 없는 망겜이라, 내가 아닌 누구든 그저 필요했던 것뿐이구나.
다시 말하지만 나는 아무런 기대를 한 적이 없다.
형에게도, 이 게임에게도.
그저 지금은 멈추기엔 너무 멀리 달려왔을 뿐이고

 

(이렇게 재밌는 게임에 왜 사람이 없지?)

 

제노니아가 생각보다 재미있었던 것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랭커가 되었다.
여전히 형보다는 아래였지만 상관없었다.
그와 같은 사냥터에서 사냥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하피에 사람들 너무 많은데, 그냥 다 죽일까?)
(ㄴㄴ 걍 레오성 가자.)
(너 거기가 자사가 됨?)
(ㅇㅇ.)
(와 지팡이 개사기네.)

 

침공전에서도 나름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개거품을 물고 적에게 달려드는 메인 단검, 형에게 뮨과 힐을 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연턴 지렸다ㅋㅋ)
(ㄹㅇㅋㅋ 누구 그리곤을 건드리누?)

 

누군가는 말한다.
쟁에서 가장 재미가 없는 것이 지팡이라고.
하지만 나는 형을 서포트하는 그 순간이 가장 재미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 게임 왤케 재밌냐ㅋㅋ.)
(재밌지?)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형이 뜬금없이 내게 제노니아를 추천한 이유를.
그저 흔해빠진 추억팔이 게임에 내가 이토록 진심일 수 있었던 이유를.
아마 형도 나와 같은 이유였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시간은 다시 덧 없이 흘러갔다.
추석이 코앞이었고, 현실이나 게임이나 북새통인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 와중 빼곡히 들어찬 패치노트는 형과 나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드넓은 월드 통합 대륙. 데바숲.
그것이 업데이트된 당일, 우리는 그 곳에 있었다.

 

(추석 패키지 40만원 질렀는데 무과금남.)
(아니 뽑기에 돈 좀 쓰지 말라고. 개돼지임?)
(야 여기 몹 경험치 실화냐?)
(오ㅋㅋ 어라...)

 

늘 그렇듯 툭툭대며, 데바 숲의 평야를 걷고 있노라면 익숙하지 않은 다른 서버의 유저가 눈에 띈다.
암울한 분위기를 이겨내고, 악몽같은 난이도를 뚫고 여기까지 올라온 생존자들.

그런 그들도 나와 같이, 각자의 사연이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런 그들에게, 당신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혹여나 데바 숲에서 사냥중인 단검과 지팡이 듀오를 발견한다면
데바 숲의 형제를 마주한다면, 굳이 건드리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
뒤늦은 유대로 묶인 우리는, 생각보다 제노니아에 진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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